오늘은 드디어 1년 비자를 받는 날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일찍 준비해서 이민성에 갔는데, 하루 종일 “이게 뭐하는 짓이지?” 하는 생각만 들었다.

5개월째 치앙마이에 살면서 느낀 건 이곳이 정말 살기 좋은 곳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관공서 일 처리를 하다 보면 “아, 이래서 아직 개발도상국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도 이해가 안 돼서 블로그로 남겨본다.

첫 번째 멘붕: 통장 정리 때문에 1시간 헛수고

아침 일찍 서둘러서 이민성에 갔다. 줄이 길어서 일찍 가야 한다는 얘기를 들어서 8시 반에 도착했다. 그런데 웬걸? 한 번에 빠꾸 당했다.

“통장을 제출해야 하는데 어제 정리해서 안 된다”고 한다.

잠깐, 뭔 소리지? 모든 잔고증명서, 거래내역서는 다 어제자로 출력해서 가져갔다. 은행에서 받은 공식 서류들 말이다. 그런데 통장은 왜 굳이 오늘 날짜로 찍혀있어야 하는 건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공식 서류는 어제자로 받고, 통장은 오늘자여야 한다고?”

직원에게 물어봤지만 그냥 “규정이에요” 한마디로 끝이다. 논리적 설명은 없다. 그냥 규정이니까 따라야 한다는 식이다.

문제는 이민성이 쇼핑센터 근처에 있어서 은행이 11시에 오픈한다는 점이다. 지금 9시인데 2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다.

할 수 없이 차 타고 근처 은행을 찾아갔다. 그런데 또 웃긴 게, 오늘 날짜가 찍히려면 굳이 거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20바트라도 써야 통장에 오늘 날짜가 찍힌다.

어이없어서 편의점에서 스캔으로 아무거나 하나 사고, 은행에서 통장 정리하고 다시 이민성으로 돌아왔다. 왕복 1시간이 훌훌 날아갔다.

한국에서는 인터넷 뱅킹으로 실시간 거래내역 출력하면 끝인데, 여기서는 꼭 물리적인 통장에 찍힌 날짜가 중요하다니. 어제자 잔고증명 서류와 오늘 자 실제 통장 업데이트. 머가 그렇게 중요한 건지? 이해가 안되는 일이다. 

두 번째 멘붕: 관공서인데 현금만 받는다고?

드디어 서류 검토가 끝나고 비자 수수료를 내는 단계였다. 당연히 카드로 내려고 했는데 “현금만 받는다”고 한다.

잠깐, 여기가 관공서 아닌가? 2025년인데 카드 결제, 스캔이 안 된다고?

“왜 현금만 받나요?” 하고 물어봤더니 “그냥 규정이에요” 또 이 답변이다.

진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 돈은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카드 결제를 안 받는다는 건 전자적 기록을 남기지 않겠다는 뜻 아닌가? 정말 깨끗하게 입출 내역이 정리되는 걸까?

혹시 담당 직원 개인 주머니로 들어가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그런 건 아니겠지만, 시스템 자체가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구조다.

할 수 없이 근처 ATM에서 현금을 뽑아서 냈다. 이게 2025년 맞나?

세 번째 멘붕: 송금은 안 되는데 현금 출금은 된다는 논리

비자를 받고 나서 이제 중고차 잔금을 치르러 은행에 갔다. 300,000바트를 상대방 계좌로 송금하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내 휴대폰에 뱅킹 앱도 있고, 그 앱과 연결된 카드도 있고, 내 여권도 있으니까 당연히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300,000바트 송금하려면 통장이 필요하다”고 한다.

“앱도 있고 카드도 있고 여권도 있는데 왜 통장이 필요한가요?”

“큰 금액은 통장이 있어야 해요.”

통장은 와이프가 가져가서 집에 있었다. 망했다 싶었는데, 직원이 대안을 제시했다.

“현금으로 뽑아서 상대방 은행에 가서 현금 입금하면 돼요.”

잠깐, 이게 무슨 논리인가? 300,000바트 송금은 통장이 있어야 하는데, 300,000바트 현금 출금은 아무 문제없다고?

더 웃긴 건 그 돈을 들고 30초 거리에 있는 다른 은행에 가서 현금 입금하는 것도 아무 문제없다는 점이다.

이게 도대체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자금 추적을 어렵게 만드는 시스템 아닌가?

중고차 판매자가 “현금 들고 와라” 했는데, 나는 깨끗하게 기록을 남기려고 굳이 송금으로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결국은 어떻게 됐나?

  • 내 통장: 현금 출금 300,000바트 (어디로 갔는지 모름)
  • 상대방 통장: 현금 입금 300,000바트 (왜 들어왔는지 모름)

결국 기록상으로는 돈의 이동 경로가 안 보이게 됐다. 내가 깨끗하게 하려던 게 오히려 더 복잡해졌다.

하루에 3번 멘붕: 이게 정상인가?

하루 동안 3번이나 “이게 뭐하는 짓이지?” 하는 생각을 했다.

첫 번째는 전자 서류는 어제자로 받고 물리적 통장은 오늘자여야 한다는 논리 없는 규정.

두 번째는 2025년 관공서에서 현금만 받는다는 투명성 제로 시스템.

세 번째는 송금은 안 되는데 현금 거래는 된다는 자금 추적 방해 시스템.

왜 이럴까? 나름의 추측

5개월 동안 치앙마이에 살면서 느낀 건 태국 사람들이 나쁜 의도를 가진 건 아니라는 점이다. 그냥 시스템이 구식이고 비효율적일 뿐이다.

아마도 이런 이유들이 있을 것 같다:

디지털 전환이 늦어서 한국은 2000년대 초반부터 인터넷 뱅킹, 전자정부 시스템을 도입했다. 태국은 아직 그 단계에 있는 것 같다. 특히 관공서는 변화가 더 느리다.

기득권 보호 현금 거래가 많으면 누군가에게는 이익이다. 투명하지 않은 시스템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관료주의 “원래 이렇게 했으니까 계속 이렇게 하자”는 식이다. 왜 그런지는 중요하지 않고 규정이니까 따라야 한다는 마인드.

인프라 문제 카드 결제 시스템을 도입하려면 비용이 든다. 관공서 예산이 부족해서 못 하는 걸 수도 있다.

그래도 살 만한 곳, 치앙마이

이런 비효율적인 면들이 있지만, 그래도 치앙마이는 살 만한 곳이다. 일상생활에서는 이런 관공서 업무를 자주 하지 않으니까.

오히려 생활비는 저렴하고, 날씨는 좋고, 사람들은 친절하다. 이런 시스템적 문제들은 시간이 지나면 개선될 것 같다.

특히 민간 부문은 훨씬 효율적이다. 편의점에서는 카드 결제 잘 되고, 배달 앱도 잘 되고, 인터넷 뱅킹도 잘 된다. 문제는 관공서다.

한국 시스템이 그립다

이런 날이면 한국 시스템이 정말 그리워진다.

비자 연장? 온라인으로 신청하고 카드로 결제 끝. 송금? 뱅킹 앱에서 클릭 몇 번이면 끝. 잔고증명? 인터넷에서 바로 출력 가능.

한국에서는 당연했던 게 여기서는 특별한 것이 됐다.

근데 생각해보면 한국도 20년 전에는 비슷했을 것이다. 통장 들고 은행 가서 줄 서고, 관공서에서 현금으로 수수료 내고.

태국도 시간이 지나면 변할 것이다. 다만 그 속도가 좀 느릴 뿐이다.

결론: 인내심이 필요한 곳

치앙마이에서 비자 업무를 하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논리적으로 이해하려고 하면 멘붕 온다. 그냥 “원래 이런 곳이구나” 하고 받아들이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다음번 비자 갱신할 때는 미리 준비해야겠다:

  • 통장은 미리 당일에 정리해 놓기
  • 현금 미리 준비해 놓기
  • 시간 여유 충분히 두기
  • 멘탈 단단히 하기

그래도 1년 비자를 받았으니 당분간은 이런 스트레스 안 받아도 된다. 다행이다.

오늘 하루 동안 “이게 뭐하는 짓이지?” 하는 생각을 3번이나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치앙마이가 좋다. 이런 비효율적인 면들마저도 이제는 이곳의 특색이라고 생각한다.

완벽한 곳은 없다. 한국에는 한국의 스트레스가 있고, 태국에는 태국의 스트레스가 있다. 다만 태국의 스트레스가 더 웃기고 황당할 뿐이다.

5천바트 쓰기 어려운 치앙마이에서, 오늘도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었다. 비효율적이지만 재미있는 추억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