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에 온 지 벌써 5달째다. 이제는 완전히 정착한 기분이다. 처음에는 뭐든 신기해서 매일 나가서 먹고 돌아다니던 관광객 모드에서 벗어나 이제는 그냥 집에서 밥해 먹고 동네 마트 가고 하는 일상적인 삶을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생활비에 대한 현실적인 체감이 생겼다. 태국이 정말 싸다 했는데 관광객 모드로 살 때는 솔직히 거의 체감을 못했지만 이제 너무나 잘 체감되고 있다.
한국 시절: 아이들 둘 키우며 월 600만원
한국에 있을 때는 아이들 둘 키우면서 총 600만원 정도를 월 생활비로 사용했다.
학원비, 외식비, 마트 장보기, 각종 생활비를 합치면 600만원이 딱 맞아떨어졌다. 더 절약할 수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막 펑펑 쓴 것도 아니었다. 그냥 보통의 생활이었다.
근데 그때는 600만원이 빠듯하다고 느꼈다. 한 달에 한 번씩 “이번 달은 좀 많이 썼네” 하면서 가계부를 들여다보곤 했다.
태국 생활: 필요한 거 다 사고도 남는 돈
태국에 와서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처음에는 필요한 물건들을 사야 했다. 생활용품부터 시작해서 전자제품, 가구까지. 이것저것 사다 보니 처음 몇 달은 지출이 좀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관광객 모드도 아니고 그냥 집에서 밥해 먹고 하는 날들이 많아지다 보니 생활비가 확실히 줄었다. 진짜 확실히 줄었다.
가장 큰 체감은 은행 계좌 잔고다. 10만바트를 계좌에 채워 놓으면 만바트 쓰기가 참 어렵다는 게 느껴진다. 진짜로.
관광객 모드 vs 정착 모드의 차이
관광객 모드 시절 (첫 1-2달)
옛날에 관광객 모드일 때는 매일 저녁 사먹었다. 그러면 2-3천바트가 그냥 나갔다. 별생각 없이.
“오늘은 어디서 먹지?” 하면서 맛집 검색하고, 좀 유명하다는 곳 가서 먹으면 가족 네 명이 2-3천바트는 기본이었다. 그때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치앙마이 왔으니까 치앙마이 좀 알아 볼 겸 유명한 음식 먹어야지, 뭐 이런 마음이었다.
정착 모드 현재 (3-5달차)
이제는 그런 식당들이 가성비도 그렇고 그렇게 큰 메리트도 못 느끼다 보니 가끔 외식을 해도 1000바트 정도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올드 시티, 님만해민 근처 식당들은 맛도 그저 그렇고 가격만 비싸다. 현지인들이 안 가는 데는 다 이유가 있더라.
그 대신 집 주변 로컬 맛집을 많이 알게 됐다. 항아리 구이 삼겹살 배달시키거나 가서 사오면 3-400바트면 가족이 배불리 먹는다. 양도 많고 맛도 좋다.
그냥 귀찮아서 집에서 때우는 날도 많아졌다. 그러면 100-200바트 정도만 사용한다. 마트에서 재료 사서 집에서 해먹으면 정말 저렴하다.
10만바트의 마법
이렇게 생활하다 보면 10만바트 은행 계좌 잔고가 거의 줄지 않는다. 진짜로 만바트 단위가 잘 바뀌지가 않는다.
처음에는 “설마 그럴까?” 했는데 정말 그렇다. 한 달 지나고 계좌 보면 몇만천바트가 남아있다. “어? 이것밖에 안 썼나?” 하게 된다.
한국에서는 한 달에 600만원이 빠듯했는데, 여기서는 한 달에 200만원(5만바트 정도) 쓰기도 어렵다. 물론 학비는 별도다.
학비를 내고도 남는 생활비
두 명 애들 학비가 월 200만원 정도 든다. 국제학교 다니니까 이 정도는 든다. 한국의 사교육비 생각하면 그렇게 비싸다는 생각은 안 든다.
그 학비 200만원을 내고도 월 600만원 쓰기가 어렵다. 진짜 어렵다. 어떻게 써야 600만원을 다 쓸지 모르겠다.
한국에서는 학원비 빼고도 500만원은 썼는데, 여기서는 생활비로 300만원도 다 못 쓴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돌고래유괴단 삼성카드 광고가 떠오르는 순간
요즘 돌고래유괴단 삼성카드 광고 주유소 편이 자꾸 생각난다. “200만원 결제해도 상관없을 거야. 난 생활비에서 할인받을 거거든.”
진짜로 200만원 결제해도 상관없다. 어차피 생활비에서 200만원 받을 거니깐. 한국과 동일한 패턴으로 생활하는데 어디서 200만원을 그냥 주는 느낌이다. 공짜 학비 땡큐.

한국에 있을 때는 상상도 못 한 일이다. 그때는 600만원도 빠듯했는데.
구체적인 지출 내역
외식비의 변화
관광객 모드 (1-2달차)
- 저녁 외식: 2,000-3,000바트 (가족 4명 기준)
- 점심 간단히: 500-800바트
- 카페, 디저트: 300-500바트
- 일일 외식비: 3,000-4,000바트
정착 모드 (3-5달차)
- 저녁 외식 (가끔): 800-1,200바트
- 로컬 맛집 배달/포장: 300-500바트
- 집에서 해먹기: 100-300바트
- 일일 식비: 500-1,000바트
차이가 엄청나다. 하루에 2-3천바트씩 아끼는 셈이다.
장보기 패턴의 변화
처음에는 뭘 어디서 사야 할지 몰라서 비싼 슈퍼마켓만 갔다. Rimping이나 Central Festival 같은 곳에서 장을 보니까 한 번에 2-3천바트씩 나갔다.
이제는 동네 마트, 로컬 시장을 알게 됐다. 같은 물건도 절반 가격에 살 수 있다. 특히 과일이나 야채는 로얄프로젝트나 Go wholesale에서 훨씬 싸고 신선하게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한 번 장보는 데 3천바트면 일주일은 버틴다. 가족 네 명이.
왜 이렇게 적게 쓰게 됐을까?
1. 로컬라이징의 힘
가장 큰 이유는 로컬라이징이다. 현지인들이 가는 곳을 알게 되니까 가격도 저렴하고 품질도 좋다.
관광지 근처 식당 vs 동네 식당의 가격 차이는 2-3배(심지어 5배 차이도 난다)다. 맛은 오히려 동네 식당이 더 좋은 경우가 많다.
2. 집에서 해먹는 재미
한국에서는 집에서 해 먹나 밖에서 먹나 가격이 비슷했다. 여기서도 집에서 해 먹나 밖에서 사먹나 가격이 비슷하다. 근데 여기는 로컬식당 가격이다. 40~80바트 하는 로컬 식당 가격. 아직 얘들도 어리고 하니 에어컨 없는 로컬식당에서 저녁 먹기 좀 꺼려지는데 집에서 해 먹으니 딱 그 정도 가격에 해결 가능하다.
3. 불필요한 소비의 감소
한국에서는 스트레스 받으면 쇼핑하거나 비싼 음식 먹으러 다녔다. 여기서는 그런 스트레스가 별로 없다.
날씨도 좋고 생활 리듬도 여유롭다 보니 굳이 돈 쓸 일이 줄어든다.
4. 엔터테인먼트 비용 차이
한국에서는 먼가 하려고 하면 10만원은 그냥 없어졌다. 여기서는 키즈 카페 하루 종일이 300바트(12,000원) 정도이다. 쇼핑몰 오락실을 가서 신나게 돈 써도 500바트 쓰기 어렵다.
산책, 트레킹, 사원 구경, 야시장 구경 같은 건 돈이 별로 안 든다.
생활 수준은 떨어지지 않았다
중요한 건 생활 수준이 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더 좋아졌다.
음식: 신선한 과일, 야채를 더 많이 먹게 됐다. 태국 과일과 야채 가격은 상상 이상으로 싸다.
주거: 한국에서는 좁은 아파트였는데 여기서는 50평 넘는 넓은 집에 망고가 나는 정원까지 있다. 그런데 주거비는 오히려 더 저렴하다.
여가: 자연 친화적인 여가 활동이 많다. 사람들이 별로 없어 그에 대한 스트레스는 줄고 건강은 좋아졌다.
교육: 아이들 국제학교 교육 수준도 한국 사교육과 비교해서 나쁘지 않다.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겠다.)
예상치 못한 절약 포인트들
여가비
한국에서는 주말에 얘들 데리고 나갔다 오면 한 거 없이 20만원은 쓰던 거 같은데 여기서는 주말 하루 종일 밖에 나갔다 와도 10만원 쓰기 어렵다.
미용, 관리비
한국에서는 헤어샵, 피부관리 등등 해서 한 달에 꽤 나갔다. 여기서는 현지 샵들이 저렴하면서도 퀄리티가 좋다.
특히 마사지 같은 건 한국의 1/3 가격에 더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의류비
1년 내내 여름 옷만 입으니까 옷 살 일이 줄어들었다. 두꺼운 겨울 옷, 계절별 옷 바꿔가며 살 필요가 없다.
로컬 마켓이나 그냥 일반 브랜드 매장에서 저렴한 여름 옷 몇 벌 사면 끝이다.
가끔 죄책감이 든다
이렇게 적게 쓰다 보니 가끔 죄책감이 든다. “이렇게 적게 써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는 매달 가계부 정리하면서 “이번 달은 많이 썼네, 다음 달은 좀 줄여야지” 했는데, 여기서는 “이번 달은 너무 적게 썼네, 뭔가 더 사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한다.
근데 막상 더 쓸 게 없다. 필요한 건 다 있고, 먹고 싶은 것도 저렴하게 해결되고.
결론: 예상을 뛰어넘는 가성비
치앙마이 5달 차 생활비 현실은 예상을 뛰어넘는 가성비였다. 한국에서 월 600만원 쓰던 가족이 여기서는 학비 포함해도 4~500만원이면 충분하다.
생활 수준은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더 좋아졌다. 스트레스는 줄어들고 여유는 늘어났다.
10만바트 계좌에 넣어놓고 5만바트 쓰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정말로.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한 일이다.
물론 개인차는 있을 것이다.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우리 가족에게는 치앙마이가 가성비 최고의 선택이었다.
가끔 친구들이 “언제 한국 돌아올 거야?” 하고 물으면 “굳이?” 하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이렇게 여유롭게 살 수 있는데 왜 돌아가야 하나.
적어도 당분간은 이 생활이 계속될 것 같다. 5만바트(200만원) 쓰기 어려운 이 마법 같은 생활이 말이다.